우리 은하 중심에 블랙홀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어떨까요? 저는 이 질문을 처음 접했을 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과학적 사실이 사실은 '가장 그럴듯한 가설'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혼란을 느꼈습니다. 블랙홀은 이미 사진으로도 확인된 존재 아니었나요? 그런데 최근 천문학계에서는 그 정체가 블랙홀이 아닐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블랙홀처럼 보이지만 블랙홀이 아닐 수도 있는 이유
1990년대 천문학자 안드레아 게즈와 라인하르트 겐젤은 우리 은하 중심에서 빠르게 공전하는 별들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S2라는 별은 태양 질량의 약 400만 배에 달하는 무언가를 중심으로 극단적으로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렸죠. 정작 그 중심에선 아무런 빛도 나오지 않았고, 이는 블랙홀의 존재를 강력하게 시사했습니다. 이 발견으로 두 사람은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유럽우주국(ESA)의 가이아 위성이 공개한 정밀 관측 데이터에서 예상치 못한 현상이 포착되었습니다(출처: ESA). 우리 은하 외곽 별들이 기존 이론으로 예측한 것보다 약 30km/s나 더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속도 곡선(rotation curve)이란 은하 중심으로부터 거리에 따라 별들의 공전 속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일반적으로 은하 외곽에서는 암흑물질의 영향으로 속도가 평탄하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약 52,000광년 지점부터 속도가 떨어지는 모습이 관측된 거죠.
이 현상은 우리 은하의 총 질량이 생각보다 적거나, 질량 분포가 완전히 다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오해했을까요? 최근 발표된 연구는 충격적인 가설을 내놓습니다.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것이 블랙홀이 아니라 페르미온 덩어리일 수 있다는 겁니다.
페르미온(fermion)은 전자나 쿼크처럼 파울리 배타 원리를 따르는 입자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같은 공간에 두 개 이상의 입자가 동일한 상태로 존재할 수 없어서 서로 밀어내는 성질을 가진 입자죠. 이 연구에서는 암흑물질을 구성할 것으로 추정되는 암흑 페르미온이 은하 중심에 초고밀도로 뭉쳐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 덩어리는 중력으로 주변 별을 붙잡지만, 블랙홀처럼 특이점(singularity)까지 붕괴하지는 않습니다. 특이점이란 물질이 무한대의 밀도로 압축되어 물리 법칙이 붕괴하는 지점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관측 결과를 설명하는 모델을 선택할 뿐, 그 모델이 절대적 진리라고 확정할 수 없다는 거죠. 실제로 연구팀이 수행한 통계 분석에서는 블랙홀 모델과 페르미온 덩어리 모델 모두 은하 중심 별들의 궤도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에너지 레벨이 50keV에서 300keV 사이인 페르미온을 가정했을 때, 관측 데이터와의 일치도가 블랙홀 모델과 구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사건의 지평선 사진도 페르미온 덩어리로 설명 가능하다
가장 큰 의문은 이겁니다. 2019년과 2022년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이 촬영한 블랙홀 사진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저 역시 처음엔 이 부분이 결정적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M87 은하와 우리 은하 중심에서 포착된 빛의 고리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으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연구는 페르미온 덩어리도 동일한 빛의 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초고밀도로 압축된 페르미온 덩어리 역시 주변 시공간을 극단적으로 휘게 만들어 블랙홀과 유사한 중력 렌즈 효과(gravitational lensing)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겁니다. 중력 렌즈 효과란 강한 중력이 빛의 경로를 휘게 만들어 마치 렌즈처럼 빛을 굴절시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이 포착한 이미지는 사실 블랙홀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 강착 원반(accretion disk)에서 나오는 빛입니다. 강착 원반이란 블랙홀 주변을 돌며 떨어지는 가스와 먼지가 마찰열로 뜨겁게 달아오르며 빛을 내는 구조를 의미하죠. 페르미온 덩어리도 충분히 강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면 동일한 강착 원반을 형성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본 것과 같은 도넛 모양의 빛의 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제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블랙홀 사진'이라고 부르는 이미지가 사실은 블랙홀의 직접적 증거가 아니라, 강한 중력원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증거일 뿐이라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블랙홀인지 페르미온 덩어리인지 구분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딱 하나 남아 있습니다. 바로 광자 고리(photon ring)입니다. 광자 고리란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바로 앞, 중력이 너무 강해서 빛이 부메랑처럼 되돌아가며 극단적으로 쌓이는 영역을 말합니다. 이 고리의 크기는 사건의 지평선 반지름의 약 1.5배에 불과해서, 현재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의 해상도로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이미 광자 고리를 관측했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논란이 많습니다(출처: 한국천문연구원).
만약 광자 고리가 명확히 관측된다면, 그것은 진짜 블랙홀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페르미온 덩어리는 특이점까지 붕괴하지 않기 때문에 광자 고리를 만들 수 없거든요. 앞으로 더 많은 전파망원경이 추가되고 관측 정밀도가 높아진다면, 우리는 마침내 은하 중심 존재의 정체를 확실히 밝힐 수 있을 겁니다.
제 경험상 과학은 늘 이런 식으로 진화해왔습니다. 확정된 것처럼 보이던 이론이 새로운 관측으로 흔들리고, 대체 가설이 등장하고, 다시 검증 과정을 거치는 거죠. 블랙홀이라는 개념 자체도 한때는 순수한 수학적 예측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페르미온 덩어리라는 새로운 가설이 동일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번 연구가 제시한 가장 중요한 통찰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관측 결과를 가장 잘 설명하는 모델일 뿐이라는 거죠. 실제로 은하 중 약 30% 정도는 중심에 뚜렷한 블랙홀 활동 징후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 은하는 그저 자체 중력만으로 별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게다가 블랙홀의 질량은 은하 전체 질량의 0.1%도 안 됩니다. 블랙홀이 없어도 은하는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번 연구에도 한계는 분명합니다. 페르미온 덩어리 모델 자체가 관측 결과에 맞춰 설정된 이론적 구성물이라는 점이죠. 하지만 블랙홀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는 블랙홀을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블랙홀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예측되는 현상들을 관측해왔을 뿐입니다. 결국 과학적 진실은 관측과 가설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은하 중심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것을 밝혀가는 과정 자체가 인류 지성의 가장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저는 믿습니다.